“편한 길을 눈앞에 두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거야?”
아이의 물음이 뇌리를 찌른다.
그러나 아프진 않았다. 일련의 자극적인 일들 덕분에 감각이 마비되기라도 한 건지,
시체의 향은 내려앉고, 햇빛은 사라진다.
아스라이 땅거미가 진다.
남은 것은 밝은 와중에도— 높이 뜬 달 그림자 하나.
이 모든 것들이 현실이다.
시간이 흐르고, 하루가 저물어간다.
나의 앞에 편한 길이란 것이 남아있던가?
평탄한 길을 ‘편한 길’이라고 두루 말하시던가.
아무런 돌멩이조차 발에 채이지 않고,
그 흔한 시냇물조차 눈 앞에 흐르지 않고,
징검다리도 필요 없는 아스라이 젖은 계곡.
그곳에는 시체의 손가락이 발에 걸리지 않던가?
그것이 기어와 발목을 턱, 하고 잡진 않던가?
나의 갈 길을 아우성치며 가로막고 낄낄 웃어대지 않던가.
평범한 길. 편한 길. 쉬운 길. 어려운 길——. 하여간에, 그 지독한 길들.
삐—, 삐—,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귓가에 사이렌이 울린다.
그는 여전히 겁을 먹고 있었다.
언젠가는 환각에 시달리고, 환청에 시달리고, 미쳐버리고야 말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눈을 감지 않는다.
귀를 막지 않았다.
“저는.”
목소리가 나왔다.
갈라져 있었으나,
그것이 내포하는 바는 무척이나 선명했다.
“이게 편합니다.”
나에게 있어 편한 길이란 이 쪽이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운가?
길을 가다 칼부림을 맞을 것 같아 두려움에 떠는 것이 가련한가?
이는 그저 존속을 위한 본능이다. 사회를 맞이하는 것에 ‘타인’이 없다면 생존은 불가하다.
인간이 본능에 철저한 것을 ‘잘못 골랐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맥박이 뛰기 시작한다.
하나부사 쥰은 자리에서 일어나, 시체에게 다가간다.
맥박이 뛰지 않는 그것을 가지런히 뉘이고, 손을 모은다.
눈을 감긴다.
하늘은 아이들이 물감을 뿌린 것 마냥 붉다.
붉음이 내린다.
죽음이 내린다.
일생을 모르는 자의 삶이 진다.
“히메 양.”
일생日生을 모르는 자의 삶이 진다.
“저도 하나 물어보아도 괜찮겠습니까.”
일생一生을 모르는 자의 삶이—…
고요함이 내린다.
칼날과도 같은 서늘함이.
서늘한 밤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는 입을 열었다. 기어코, 참아왔던 궁금증을 털어낸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일생을 모르는 자의 삶이 진다.
당신을 모르는 자가 삶을 묻는다.
당신은 지금까지, 몇 번의 삶을 기울였나.
그리고 무엇을 삶의 지표로 삼는가.
오로지 열락이라면, 이는 여지가 없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