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사 씨. 어제 했던 이야기, 기억해?”
“…네, 그럼요.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리츠코의 산뜻한 웃음이 공간에 자리한다. 그러나 뒤이은 시간에는 침묵만이 이어졌다. 하나부사 쥰의 턱 끝을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저, 혹시.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글쎄.” 가까스로 열었던 입이 다시 다물린다. 뭔가 잊은 게 있었던 걸까? 분명히 전부 다 확실하게 처리했는데, 하라는 대로 했고, 달라는 대로 드렸고, 눈을 감으라면 감고 뜨라면 뜨고 걸으라면 걷고 뛰라면뛰고숨을참으라면참아내고죽으라면
죽을각오까지한지오래인데혹시제가뭘잘못했을까요조금만힌트를주시면제가금방알수있을것같은데어떡하면좋을까요리츠코씨제가정말로잘할수있어요분명히나아질수있을거라고생각해요그러니까저한테조금만더기회를주실수있으시다면부디단한번만이라도자비를베풀어주실수없을까요훨씬잘할테니까….
“농담.”
그 목소리에 움찔, 하고 몸이 떨린 뒤에는안도의 한숨이 자연스럽게 내쉬어진다. 어색한 웃음이 입꼬리를 장식한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큰 실례를 저지르지 않아서….
‘리츠코 씨’는 특별했다. 1980년대의 톱 아이돌을 기억하는가?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그 날의 추억은 그야말로 전설과도 같았다. 동시대를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존재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전율이 일었다. 아이돌에 환호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 정도로 젊을 적의 자신은 그녀에게 열광했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서 하나부사 쥰은 다시 전설을 조우했다.
전설은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그대로였다고. 30년이 지난 뒤에도 그대로, 그 형상을 온전히 갖춘 채로. 전혀 변하지 않는, 그 때의 그 모습. 무대 위의 그 표정 그대로. 아름답고, 고고했으며, 정상에 선 듯한, 그 눈빛. 쥰은 기억한다.
여전히 기억한다. 다시 10대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악수했던 손 끝에 힘이 느껴지자 당황해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무대 아래의 리츠코 씨는 분명 자신보다 작았을 텐데도… 그는 감히 몸을 낮추었다. 존중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놓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건, 동경인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구시절의 팬이 왔으니 조촐한 회식의 열기도 달아올랐다. 리츠코 씨는 취기가 올랐는지—아니, 실은 전혀 취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녀의 얼굴은 색 하나 바뀌지 않았으니—마이크를 잡았고, 여전히 낭랑한 목소리 그대로 음원보다 더한 라이브를 들려준다. 간단한 팬서비스에 불과했음에도 남자는 감격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헛구역질을 한 것 같았다. 어쩐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전부 다 꿈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치부했다. 그러나 휴대폰을 열면, 그곳에는 ‘리츠코 씨’의 번호가 존재했다. 그 사람이 직접 적어준 번호였다. 리츠코 씨. 글자를 다시 읽는다. 리츠코 씨. 리츠코 씨. 리츠코. 리츠코.
“…—.”
다시 속이 메스꺼워져 욕실에서 한참을 게워낸다.
뭔가 이상한가? 아니, 기분이 좋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분명 좋은 걸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 들떠 있을 리가 있겠나.
인간은 명실상부한 피식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즉 깨달았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