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전한 겨울이 이어지고 있던 시기. 히터가 돌아가는 소리가 웅웅 울리고, 두섯은 넉넉히 살 수 있는 오피스텔의 한 층에서 담요를 덮은 채 웹서핑을 하고 있던 남자는 한 커뮤니티를 발견했다. 잘그락거리며 키보드의 타격음이 굴러간다. 고요한 방 안. 딸깍, 하고 클릭하면 뜨는 것은 ‘OO’라는 간단한 이름의 교류형 웹사이트다.
“「이케부쿠로인 환영」…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곳의 짧은 주의사항을 읽어내려간다. ‘자기 나름대로의 즐거운 일’이라. 그는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일기를 쓸 만한 곳이 필요했는데. 한 번 눈을 깜빡이면, 사이트의 ‘회원가입’ 버튼이 눈에 밟힌다. 마우스를 그곳에 가져다대면 손가락으로 변한다.
“흠.”
사실 고민은 되지 않았다. 인터넷에서까지 싸우지 말라는 덧붙임말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사용할 닉네임은… 딸깍, 딸깍.
きょ |
きょう |
今日|
今|
今いけ |
今イケ|
Enter┛
[회원가입이 승인되었습니다.] [확인] |
…바로 된 건가?
하나부사 쥰은 간단히 승인된 창의 확인 버튼을 누르며 페이지를 이곳저곳 기웃대었다. 접속자 수는 별로 없었고, 게시판도 적었다. 하지만 아주 조금 있었던 남은 게시글들은 특이하면서도 정겨웠다. 달리기의 신기록을 세웠다는 학생도 있었고, 산 하나의 등정에 성공했다며 풍경 사진을 찍어 올린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오늘 처음으로 마셔 본 음료수가 무척 맛있다며 칭찬의 리뷰 일색을 남겼는데, 그 이전 게시글을 보니 엄청난 장문의 불호를 남긴 같은 계열사의 제품이 있어 다들 댓글로 알려주며 웃고 있기도 했다.
여긴 제법 괜찮은 곳이었다.
그는 착실하게 글을 써내려갔다. 회사에서 영업을 나왔다가도 특이한 것이 보이면 바로 휴대폰을 들어올려 인터넷 메일에 접속했다. 그리고 OO의 게시판 주소를 입력해 문장을 발송한다. [오전 11시. 근방에 사고가 남. 3번지에서 차가 밀리기 시작했네요.] 항상 정각에 숫자가 딱 맞는 것도, 처음에는 우연이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본다면 한시간마다 업무를 확인하던 습관 덕분이 아니려나.
‘댓글이 달렸습니다’, 같은 알림 문자가 들어오긴 하지만 내용도 보이지 않고 당장 답글을 달 수도 없어 사무실에 돌아간다면 몰래 OO에 접속해 살펴보기로 생각만 한지 오래다. 보통은 사무실로 돌아가자마자 업무 덕분에 잊어버리고 말았으니까.
물론, 가끔 시간이 나서 살펴보게 되면 즐거운 답글이 많았다. 뭔가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미 시기가 지나버려서 대답해주어도 크게 소용이 없을 것들이라 넘어간 것도 다수 있었고. 그는 이 점이 아쉽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넷 특성 상 이건 어쩔 수 없나. 정도로 무마했다.
모임 같은 채팅방에도 들어갔다. 이케바카, 라고 하는 곳인데. 꽤 귀여운 이름이지 않은가. 여기는 조금 더 닉네임스러운 것을 쓰는 게 좋을까, 싶어 설정할 이름 란을 바라보다가, 방금 막 도착한 손목시계의 포장 상자가 괜히 눈에 밟혀 ‘토케이’를 썼다. 표시되는 아바타에도 시계를 넣으니 제법 그럴듯했다.
「좋은 밤.」하고 인사해주는 츄렌 씨를 선두로,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왁자지껄해진다. 뭔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물어보면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편안했다. 익명이란 건 왠지 마음을 놓을 수 있네. 같은 감상이었다.
하나부사 쥰은 이름을 파는 사람이었다. 인연을 시작할 때에는 항상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부터가 최초였다. 그렇기에 안타깝게도, 자신을 숨기고 오로지 이야기로만 엮어내는 인연은 처음이었으며, 중독성이 강했다.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이케부쿠로의 현실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관계들은 그에게 있어 신세계와도 같았다.
어느 날 그는 담배를 피며 생각했다. 이 곳이 좋다고. 떠나고 싶지 않다고. 그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그는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했다. 가는 인연은 붙잡고, 오는 인연도 붙잡았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런 단순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들은 붙잡는다고 붙잡혀주지 않고, 붙잡지 않아도 갑자기 다가오곤 했다.
불확실성에 의한 무작위의 감정이 그에게 있어 어느 고양감을 안긴다. 하지만, 불안해진다.
토케이가 하나부사 쥰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이 관계는 달라질까?
물론— 11년 11월의 어느 날, 이 전제는 완벽히 깨어지게 되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들 항상 그랬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