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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바보입니까? m9^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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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 00 :: AU 『좀비 아포칼립스』

연계 - Poetry in Motion :: from 인스님

 

 

 

‘제정신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물음이 아니라, 어느 날의 감탄과도 비슷한 말이었다. 마른 입 속으로 낼 수 있는 언어는 아니었던지라, 하나부사 쥰은 그저 실날만큼 남아있는 침을 삼키며 “오랜만입니다.” 정도의 단조로운 인사를 내보일 수 밖에 없었다. 다름아닌 그들, 오오우나바라 이치지쿠와 쿠로이키 야츠모의 행색 덕분이었다. 분명히 깨끗해야 했을 옷은 반틈 정도 마르고 끈적한 피로 치덕치덕 물들어 있고, 피부에 묻지 않게 대충 들었다 놓으며 샤워실을 찾고 있는 듯한 고갯짓. 아마도 선샤인 시티 쪽에서 돌아오는 길에 호전적인 무리를 하나 만난 탓이겠거니, 했으나 어쩐지 위화감을 느낄 만도 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가벼웠다. 허나 그것이 안정성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액자 바깥의 인물로써 하나의 풍경을 바라보는 관람객과 더 흡사하다고 볼 수 있었다. 자신들에게는 닥쳐 오지 않으리라 여기는 하나의 무관심. 혹은 염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의식에 가까웠다. 거의 피가 묻어 있지 않은 이치지쿠 쪽이 야츠모의 뒤에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야아, 쥰 씨.” “하나부사 씨였구만.” 평소 입고 있던 옷이 아닌데다 머리카락도 조금 자라 목 뒤를 약간 덮은 탓에 간만에 본 야츠모 씨는 인식이 조금 느렸다. 선글라스 때문일지도 몰랐지만, 그는 딱히 그런 걸 신경쓰지 않았으니까. 쥰은 이런 식으로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를 대비해 매번 몰골이라도 괜찮도록 세수해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그들에게 세수가 필요할 것 같아 보이지만.

 

“한바탕 하고 오신 모양이십니다.”

“그랬지, 저어-쪽에서 말이야…”

 

살벌한 내용의 담소가 이어진다. 네거리 쪽에 아직 처리되지 않은 좀비 무리가 있는 모양이라고, 분명히 그쪽은 선발대들이 싹 쓸어둬서 시체가 즐비하는지라 그들이 발 딛기엔 그다지 좋지 못할 텐데. 대체 뭔 냄새를 맡고 기어들어오는 거냐며 야츠모가 툴툴대자 이치지쿠가 받아쳤다. “그들도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거겠지.” 농담이었겠지만, 야츠모는 그럴듯하다며 수긍했고 쥰은 심각해졌다.

 

“해서, 그 쪽 수확은 어때? 괜찮은 소식이라도 없으려나아.”

“연구 쪽 말이죠….”

 

이치지쿠의 손짓에 쥰은 잠시 동안 입을 우물거리며 내키지 않는다는 듯 생각을 거듭했다. “여전히 진척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좀비가 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 아니,” 그리고 속으로 수를 센다. “열여섯 개쯤 정도는 발견한 것 같고.” “와. 소거법?” “그렇게 보면 전망은 나쁘지 않군요.” 씁쓸해졌다. 좀비가 되는 방법을 찾으면 대체 뭘 하겠나. 사케시는 분명히 좀비 사태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제 내부 인원이 아닌 자들에게 거리낌없이 시험약을 제공하는 것에 도가 트고 말았다.

 

“낭패예요.”

 

주삿바늘에 찔릴 뻔한 것도 대체 몇 번이었나. 솔직히 벌써 찔려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증상은 보이지 않으니 아직까진 괜찮았다. “혹시 좀비화 자가진단 같은 것도 할 수 있습니까?” “그런 게 어딨어. 진단하기 전에 뇌가 파먹힐 텐데.” 야츠모가 핀잔을 줬다. 그건 그렇지.

 

담소가 끝나면 침묵의 시간이 지속된다. 주변은 여전히 고요했고, 대화 소리는 우리들 사이 뿐이었다. 아직 애매하게 전기가 끊기지 않아 작동되고 있는 신호등이 삐삐거리며 동작음을 알렸다. 몇 초 뒤가 되면 토오랸세의 멜로디가 울릴 예정이다. 지나가시오, 지나가시오, 여기는 어디로 가는 샛길인가요? 기괴하게 이어지던 음이 뚝 끊기고 나면 다시 적막이 이어진다. “돌아가야겠네요.” 단조롭게 그리 말했다. 삶의 터전은 여전히 그들에게 있어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었다. 하나부사 쥰 또한 그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한 번 옆으로 기울였다가 되돌린다. “씻으셔야 할 것 같고.” 수도는 아직 나오시죠? 라는 물음엔 “어떻게든.” 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떻게든? 나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것인지, 혹은 다른 방도가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제가 사는 오피스텔 쪽은 몇 명 남아있질 않아서 말입니다.”

 

물탱크에 남아 있는 물은 넉넉했고, 그마저도 사용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갔다. 돌아가며 바깥을 순찰하기로 했다가 시체로 되돌아오는 날이 부지기수였던 탓에 한 번은 더 큰 일이 벌어질 뻔도 했었으나, 그것만큼은 입에 담지 않았다. 반나절 전에도 다녀오라며 인사했던 사람을 곡괭이로 타격해 죽이는 경험은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감염되어 죽은 옛 아내의 경우가 훨씬 다행이었다고 할까. 물론 살아있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아 있는 것도 어찌 보면 최악의 경우였다. 어깨를 늘어뜨리며 한 번 한숨을 쉰다.

 

“근심이 많나 봐.”

“늘 그렇죠.”

 

짧게 길이 겹친 동안에는 아는 사람 이야기를 했었다. 아키 씨와 호쿠토 씨의 이야기. “여행이라, 두 분도 태평하시네요. 여전해서 다행입니다.” 아야카 씨의 이야기. “이런 상황에서 감기만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레이의 소식은 자신도 알지 못하지만, 마지막에 메시지 정도는 받은 것으로 소식을 전달했다. “내용은 기밀일 지도 몰라서 알려드리기 좀 그렇습니다만, 여기서 기밀을 따지기도 좀 뭣하긴 하군요.” 조금 웃었다. 농담인가? 아마도. 게다가 아나토미는 어디서든 잘 지낼 것 같으니까, “걱정이 없고….” 담소는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은 두 갈래로 흩어졌고, 둘은 갈 곳이 있다며 다시 어디론가 걸어가버렸다.

 

이야기했던 것들을 되새김질하며 하나부사 쥰은 다시 길을 걸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혈향, 그리고 뒤집어진 살점들. 아니,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 들어가서는 또 한바탕 게워내지 않을까. 먹은 게 별로 없으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문득, 지직거리는 통신기 소리가 들려와 그는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오피스텔 입구의 걸쇠를 풀었다. 다른 생존 캠프 쪽인가? 아니라면 국가 기관의…, 문단속을 위해 걸쇠를 다시 원위치하고 입구를 닫아버리고 나면, 신호가 끊겨버린다. 그는 허망하게 통신기로 다가가 안테나를 만졌다. 다시 소리가 들려오는 일은 없었다.

 

“…….”

 

비록 절망에 빠졌어도, 이 또한 지나가는 평범한 일상이리라.


02 :: 대화유사大化有四 - 인간은 네 번 변화한다.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