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 있다 표현해도 좋을 법한 남자는 정장을 입은 채, 볼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삽을 다시 들어올렸다. 퍽, 하고 둔탁한 소리가 먼지 쌓인 공터에서 울렸다. 이끼가 덕지덕지 묻은 손잡이는 자꾸만 미끄러져, 재차 고쳐 잡기를 반복한다. 구덩이는 충분히 깊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게 더 깊길 바랐다. 옆에는 신원 미상의 시체가 있었다. 시체의 약지에는 반지가 자리했다.
남자가 가진 것과 똑같은 종류의 링이었다.
“….”
남자는 숨을 들이마시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나오는 것은 안타깝게도 억눌린 울음소리와 비슷한 것이었다. 시체를 급조한 관에 들이고 미처 감지 못해 허옇게 낀 눈을 감긴다. 바들거리다 굳어버린 팔을 잡고 억지로 굽혀 가슴에 손을 모으도록 한다. 뚜둑, 하고 알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끔찍하다고 생각했지만 별 수 없었다.
불투명한 삶이 각막에 끼어 시야를 가린다. 액체가 흐르는 것을 닦기에는 손에 무엇이 묻어 있을지 몰라 차마 그러지 못했다. 다시 삽을 들어 흙을 덮었다. 둔탁한 소리가 또 울렸다. 피와 살이 섞여 부드러워진 공터의 토양이 급조된 관 위를 따스하게 덮어준다.
마을은 이미 폐허와도 같았다. 어제 만난 이웃들이 골목을 돌아 바라보면 차게 식어 있다. 회사는 커녕 인터넷의 전산이 돌아가지 못한지도 몇 주째다. 남자의 몸이 숙여지고 ‘무덤’에 마지막 예를 표한다. 이마를 흙에 댄 채 소리죽여 울부짖는다. 그러면 여전히 변치 않은 중력에 이끌려 내려오는 것이 하나.
달칵. 목에 걸려 있는 사원증이 땅에 닿는다. 작달막하고 각진 플라스틱 판에 쓰여진 글자는 단조롭게도, ‘하나부사 쥰’이라는 이름을 나타내고 있었다.
정처없이 떠돌았고, 목표 없이 삶을 연명했다. 언제나 정갈히 묶여 있던 넥타이는 지혈을 위해 팔에 묶어 두었던 탓인지 검붉은 얼룩이 생겨 훌어헤쳐진 채였다. 운동이나 등산 따위에 사용할 자켓을 언밸런스하게 어깨 위에 겨우 걸치고서 하는 짓이란 다름아닌 탐색이었다.
살아갈 이유가 없음에도 인간은 생존의 본능을 짊어지곤 한다. 하나부사 쥰 또한 그런 케이스에 가까웠다. 고통으로 점철된 삶을 유지한다면 분명 괴로울 텐데도, 인간의 온기를 찾는다. 대화가 하고 싶었다. 누군가와의 소통을 얻고 그곳에서 고양감을 얻고 싶었다. 함께 살아갈 이를 원했으나 제 손으로 하나를 죽여버린 지 오래여서, 모순과도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
“실례합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똑똑, 낡고 반파되어 아무도 없을 게 당연한 집의 문을 노크한다. 창조차 깨져 안이 훤하게 보이는데도, 그는 굳이 목소리를 내어 안부를 물었다. 집 안의 모습은 어딜 가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끔은 잔뜩 부패한 채 쓰러져 있는 시체를 발견할 때도 있었으나, 제 속이 비어있었기에 게워내는 데엔 문제가 없었다. 말라붙은 위액을 뱉어내며 그는 시큼한 목을 가다듬었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잠깐 사이 쉬어버린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끼릭, 끼릭. 좋지 않은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윗판의 천장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였다. 아주 조용하고, 규칙적인 음파. 하나부사 쥰은 직감했다. 그리고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대신 챙겨든 것은 그나마의 알코올이나, 천 따위의 잡동사니. 그리고 부엌 부근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여전히 날이 살아 있는 칼 같은 물품들. 그는 이것들을 사용하면서도 끊임없는 부채감을 느꼈다. 모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아는 사람일수도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별 건 아니다. 그가 과거에 심한 인터넷 커뮤니티 중독자였다는 것을 한 번쯤 상기해보라.
그는 대부분의 익명을 기억했다. 그렇기에 그들을 확신할 수 없었다. 당신은 어떤 이름으로 활동했나요? 그리 물어보아도, 제대로 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분명히 함께했을 텐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있었을 텐데. 같이 똑같은 주제에 웃거나, 싸우거나, 토론해보는 일도 있었을 텐데.
그래, 어찌 되었든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은 도망치는 것이 능사일 뿐이다.
하나부사 쥰은 테이프로 날을 감으며, 산 자의 숨을 고요히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