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삼분지계 -전- 애프터 로그입니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대강 정리하던 하나부사 쥰은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핏기 사라진 혈색. 괜히 이전에 하던 대로 미소라도 지어보면, 우중충한 인상이 드러나 관두었다. 멋쩍게 손빗으로 머리를 빗어내리곤, 생각한다. ‘다시 잘라야겠지. 정리한 뒤에… 출장이 종료되었다고 보고하고.’ 막연하게 떠다니고 있던 계획들을 빠르게 전면수정하고, 진행시키기로 다짐한다. 일할 생각을 하니 눈동자에 약한 빛이 도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인형탈 옷은 배달을 시켜 회사의 창고로 보내두고, 하나부사 쥰은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많은 결심이 매몰되어 두려움만 남아있었으나, 그는 여지껏 지켜왔던 ‘집’이 좋았다. 여전히 이케부쿠로를 떠나지 않았던 것과도 같은 맥락이어서, 그의 마음 한 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동거인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건 꽤나 무거운 결심이기도 했다.
촬영음 소리, 수많은 텍스트가 눈 앞에서 지나갔던 그 날, 그는 순간적으로 대인을 향한 기피 증세에 시달렸다. 다만 곱씹고 있자면— 그는 본디 이러한 것들에 자주 노출되어 있었으며, 조금 정도는 익숙해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판정에 다다른다. 그야 몇 년동안 똑같은 곳을 지나다니고 있었고, 불러세우면서 명함을 주거나, 펜을 주거나, 스티커를 주거나… 게다가 주말에는 버스킹이나 밴드 공연까지 하기도 했으니 어련할까. 여기저기 얼굴이 팔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되돌아간다, 라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어 큰 감상은 없었다. 며칠 간의 숨고르기 후에 그는 평온함을 되찾았고, 약간의 결심 정도를 안은 채 눈에 익은 오피스텔의 자택 문으로 향했다. 내부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을 반기든, 혹은 반기지 않든 간에… 그는 어떤 것이든지 감내하기로 했다. 허나 이것이 큰 실책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녀왔습니….”
채 끝내지 못한 인사의 끝이 흐트러졌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제대로 된 난방조차 돌아가지 않는 서늘함이었다. 일순 느껴지는 소름에 눈을 깜빡이다가, ‘외출했나?’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발을 들이밀자 버석거리는 모래의 감촉이 신발 밑창을 간질인다. 매번 깔끔떨며 강박증마냥 집을 청소하던 동거인이 이 상태를 그대로 놔둘 리가 없을 텐데. 짧은 현관 복도를 나아가 거실로 접어들자, 그는 잠시 헛숨을 들이켰다. 술병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싱크대에 쌓여 있는 접시들 사이로는 초파리가 간혹 보였다. 혹여나 잘못 밟을까 거실의 중앙으로 부리나케 나아가면, 거실 한 구석에서 움찔거리는 인영이 하나 보였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무슨 일이지? 강도라도 들었던 건가? 아니, 그렇다기엔 이 상황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케시 히로의 붉은 눈동자는 뜨여 있었으나 초점이 없었고, 관성적으로 술병을 기울이며 목구멍으로 액체를 넘기고 있었다. 군데군데 든 멍자국으로 미루어보아 자해라도 행한 듯 꼴이 사나워서, 하나부사 쥰은 곧장 그에게 다가갔음에도 차마 붙잡아 일으키질 못했다.
“…사케시 군,”
“쥰 씨, ….”
갈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케시 히로는 뒤이은 짧은 기침을 한 뒤, 웅얼거리듯이 쇳소리를 냈다. “계속, 마시고 있는데… 취하질 않아요, …” 저 어떡하죠, 그리고 그대로, 위기감이 앞섰다. 어쩐지 그가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쥰은 말을 더듬으면서도 어떻게든 그를 다독이려 애썼다.
“사쿠라 씨도 되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대체 그간 무슨 일이….”
“…네? 누나요?”
사케시 히로의 엉망진창인 표정에 스친 것은 자그마치 슬픔이었다. 당신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하고 되묻는 듯한 이질적인 눈빛이 새까만 눈동자를 마주했다. 그리고는, 하하…. 허파라도 빠진 듯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이젠 누나까지 들먹이시는 거예요?”
“…….”
“당신만은 그러면 안 되잖아요.”
질책과 같은 말이 비수처럼 꽂힌다. 뭔가, 무언가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인가? 내가 없는 동안, 집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 하나부사 쥰의 시선이 떨렸다. 어떻게든 생각을 정리해보려 하다가, “일단,” 수습이라도 하려는지 그의 몸이 바로 섰다. “얼굴을… 닦을 것이라도 가져오겠습니다. 상태가 안 좋아요. 히로 군.” 그를 달래려는 듯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욕실이 있는 곳으로 옮기는 발걸음은 빨랐으며, 지나가는 길목마다 먼지가 일어났다.
‘뭔가 잘못됐어….’
그렇게 생각했다. 욕실의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보이는 건 깨진 거울과 그 아래에서 흐르는 핏방울이었다. 언제나 열을 맞추어 정리해두던 선반 위의 물건들은 어지러이 떨어진 채 내용물이 흘러내린 것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전에도 자주 사용했던 수건을 들어올리자, 쥔 손으로 버석한 감각이 느껴졌다. 따뜻한 물을 틀어 조정하는 데만 해도 한참 걸렸다. 수건을 물에 적신 뒤 힘을 주어 비트는 데만 해도 수억 년의 시간이 흐르는 것만 같았다.
김이 피어오르는 물을 바가지에 담고 걷어낸 팔에 온기가 남아있는 젖은 수건을 걸친 채로도, 그는 생각을 차마 정리하지 못했다. 거실로 나오는 발걸음이 따끔거렸다. 그 사이 사케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비척거리며 냉장고를 열고 있었다. 떨리는 손이 잡은 것은 술병이었다. 쥰이 나온 것을 눈치챘는지,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인간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어떠한 애상이 감돌았다.
“제가… 그동안 쥰 씨를 너무 붙잡아뒀죠.”
하하, 집 꼴이…. 몇 번이나 헛도는 손으로 마개를 열고 입에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알코올을 욱여넣는다. 액체를 삼키는 목의 움직임에는 서투름이 담겼다. 조만간 정리하고 나갈게요, ….
“살아보니, 혼자서도 꽤 살만하네요.”
“……히로 군.”
물을 쏟지 않도록 그에게 다가간 하나부사 쥰은 가만히 그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리고 팔에 걸린 수건을 들어올려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는 반항하지 않았고, 눈물자국을 조심스럽게 지웠다. 입술이 여기저기 터서 꼭 아사하기 직전인 것 같았다. 실제로 더 마른 것 같기도 했다. 제대로 못 먹은 걸까. 아니, 안 먹은 건가.
전혀 살만하지 않잖아. 꼭 죽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이잖아. 그게 온전히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그저 간단히 사정을 설명해주기만 해도 되는 일이었을 텐데, 그걸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도 아닌 걸 알고 있었을 텐데. 단지 자신이 신경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어련히 살아가겠거니,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
할 수 있는 말은 단지 그 뿐이었다. 얼굴을 닦아주는 손길에, 사케시 히로의 고개가 무게를 약간 실었다. 하나부사 쥰은 한숨을 쉬고 골몰하다가, 그를 끌어안아 토닥여주었다. 자그마치 한 달간의 부재로 인한 결과는 이러했다. 그 결과가 이 꼴이다. 머리가 어지러웠으나,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저녁은 뭘 드시고 싶으십니까.”
품 속에서 어쩐지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쥰은 싱크대 근처에서 굴러다니는 작은 약통을 발견하고, 한숨을 쉬며 그를 좀 더 세게 끌어안았다. 라벨에는 이전에도 보았던 익숙한 단어가 쓰여 있었다. ‘불안증세 완화’. 그가 잠에 들지 못할 때면 으레 섭취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같이 잘까요, ….”
“……네.”
먼지가 날아다니는 방, 폐허 속에서 어깨가 떨렸다.
그것이 진실된 울음인지, 혹은 숨겨진 웃음인지는 아는 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