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빈도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연을 중히 여기지 않는 자더라도, 정보와 소통, 그리고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도구. 인간들은 그 도구를 손에서 떼어낼 수 없다.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적어도 이 이케부쿠로에서는 필수품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
그럼,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사람이 많은 곳에는 자연스럽게 괴담도 늘어나는 법이다.
전통적인 괴담도, 신예 괴담도,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괴담도 통틀어서 말이다.
들어본 적 있는가? 그 유명한 분신사바를.
모른다면 언젠가 죽었을 때 길을 못 찾아올 지도 모르니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다른 거라면 괴인 앤서는? 모른다고?
그거지, 휴대폰 10개를 준비해서 첫 번째가 두 번째에게, 두 번째가 세 번째에게… 줄줄이 전화를 걸면, 놀랍게도 전원이 ‘통화중’이 떠야 하는데, 거기서 랜덤으로 전화를 받는 사람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다.
어렵다고? 그러면 조금 간단한 걸로 가 볼까. 리카쨩 전화. 알고 있나? 리카쨩. 인기 많은 인형이었지.
이벤트성으로 전화를 걸면 대답해주는 녀석도 있었고. 유명한 대사들이 딱 세 개 세트로 있다.
지금은 외출 중입니다. 지금은 당신 집 앞에 있습니다. 지금은 당신의 뒤에 있습니다.
이제 조금 기억나나?
그래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그저 괴담이지 않나. 방금 전 휴대폰 이야기랑 맥락이 비슷하긴 한데.
라고 묻는다면, 이들이 무언가의 ‘집단’일지도 모른다는 작은 가능성에 주목해주길 바란다.
온갖 통신사들이 놓친 전화회선은 어디로 나아가는가? 괴이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간을 현혹시킬 수 있는가. 괴물은? 귀신은? 신화적인 존재들은? 그들이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입증시킬 수 있나?
못 하지. 과학적이니 뭐니, 그런 이야기는 말고. 그나저나 거기도 오류 많고, 따져 보면.
자, 그럼 잠시 본론으로 들어가보자. 지금까지는 아주아주 긴 서론이었다.
조금 더 어울리는 말투로 하는 게 좋을까.
안녕하십니까, 하나부사 쥰입니다.
지금은 당신 옆에 있어요.
짙은 남색의 그림자가 일렁인다. 공중전화 부스에 5엔을 두 개 넣은 뒤 5723으로 전화를 걸면 당신의 그림자 곁에 선 채로 그는 대답한다. 주의사항은 총 세 가지.
하나. 그를 알려 하지 말 것.
둘. 부탁은 한 가지만.
셋. 그의 질문에도 대답할 것.
그는 어떤 부탁이든 들어준다고 한다. 그것이 설령, 누군가를 죽여달라는 부탁일지라도.
그는 누구도 죄책감을 가지지 않도록, 친절한 사고사로 그를 이끌어준다.
“…그래서 보낼 서류는 이게 다인가? 아닐 텐데.”
“죄송합니다. 어제 전달받으며 누락된 것 같습니다.”
“하나부사 씨. 이것도 한두번이어야지. 아무리 그쪽 잘못이라지만 제대로 확인을 해야….”
한숨을 쉬는 상사의 목소리는 지겹다. 아, 누가 죽여달라는 부탁 해주지 않으려나.
그는 부탁을 이행하는 것에만 충실했지, 자신이 무언가를 행하는 것에는 신물이 났다.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니, 인간의 형태로 사는 것은 정말 지겨운 일이구나.
하나부사라는 성은 무척 편리하다. 유명인도 있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해서 남용되는 성도 아니다. 제법 옛부터 이어져내려오던 것이라.
“하…됐다, 이만 퇴근하지.”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른 날과 똑같은 퇴근 시간. 인사를 남기고, 사무실의 불을 끄고. 남아있는 PC들의 전원을 하나씩 끈다.
오늘의 날씨는 맑다. 어두워진 사무실 안, 그대로 자신의 의자에 풀썩 앉아 등받이에 기대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시간을 보내며…. 째깍, 째깍. 시계가 돌아간다.
그리고 동시에,
불협화음을 울리며 일제히 모든 전화벨이 울린다.
책상과 책상 사이를 지나며 그 음을 차분히 듣고, 삼킨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오늘은 네 번째 벨로 할까.
“…예, 하나부사 쥰입니다.”
드디어 오셨습니까, 고객님.
부탁 하나에 질문 하나, 받아갈게요.
이건 인간형 괴담들의 사업이다.
명령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객체들을 위한.
아주 간편하고 조촐한 사업.